출처) 이문장 님의 혀로 하는 영어공부에서
생각은 한국어로 하되, 그것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 대한 방법론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도 학습의 법칙이 있듯이,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에도 필요한 방법과 훈련이 있다. 단어 공부, 숙어 공부, 영어 문장의 얼개 연습, 문법 공부 등에 새로운 방법이 더해져야 한다.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 보면 (영어로 말하는 경우에도 그렇지만) 내가 안다고 생각한 단어들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상황에 적합한 단어를 구사하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가 단어를 외우는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어 단어가 한국어로 무슨 뜻인지만 열심히 외웠지, 반대로 한국어 단어를 영어로는 무어라고 하는지는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듣기에 있어서 구멍은 영어의 소리 자체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발음에 있어서 구멍은 한국어와 영어 소리에 차이가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듣기와 발음의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치-즈와 김치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에 있다.
한국인들의 혀는 평상시 윗니-잇몸-입 천장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데 반해, 영미인들의 혀는 평상시 아랫니-잇몸에 내려와 있다
두 개 이상의 음절이 오는 경우 영어에는 반드시 리듬이 들어가는 이유가 무언지도 알게 됐다.
리듬을 넣지 않으면 그러한 조음 구조를 가지고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조음구조를 연습하면서는 소리가 다르게 들려왔다. 영어의 소리 그 자체가 들려왔다. 영어 단어들이 아닌 영어의 소리가 다 들려왔다. 영어라는 소리 세계가 처음으로 열리는 느낌이었다. 나의 듣기 실력이 다른 차원으로 뛴 듯했다. 뜻을 알아들으려고 신경을 집중하지 않아도 소리 전체가 들려왔다
한국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AFKN이나 영화가 아니라 영어의 소리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본적이고 체계적인 소리 학습교재다
체계적인 소리 듣기 학습을 위해서는 다음의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1) 원리 - 영어 소리 자체를 들어야 한다
가사를 알고 있는 팝송은 시끄러운 시내버스 안이나 복잡한 백화점 안에서 들어도 단어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들린다. 그러나 가사를 모르는 팝송은 조용한 장소에서 집중해서 들으려고 해도 무슨 말인지, 무슨 단어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영어를 소리로 듣지 못하고 단어로 듣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한국에서 갓 건너와 영국이나 미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고, 단어를 모르니까 저절로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기 때문에 귀가 금방 트이는 것이다. 한국에서 하는 영어 듣기는 이 단계가 없는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다. 이것을 필자는 구멍이라고 말한다
치유는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인 영어 학습자들이 영어 소리 자체를 듣는 훈련만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3개월 내지 6개월이면 귀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 방법 - 소리와 씨름하라
영어의 소리 세계를 정복하는 체계적인 방법을 필자는 대체로 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자음과 모음 학습 2단계영어의 리듬 및 소리 세계의 변화 학습 3단계단어 학습 4단계기본 문장 학습 5단계응용 학습이다. 여기서 4, 5단계의 학습은 소리의 흐름이 의미로 전환되도록 하는 훈련이다.
첫째, 영어 철자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영어의 소리 듣기 훈련은 영어의 소리 그 자체를 듣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영어 소리 듣기 훈련을 하는 동안에는 철자를 사용하면 안된다. 지금까지 영어 청취 교재들은 철자를 가지고 했는데, 이것은 듣기 훈련을 방해하는 것이다. 철자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인을 위한 영어 음성 훈련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모르고 하는 짓이다. 소리를 듣고 단어를 써넣도록 하는 훈련도 듣기를 도와주는 훈련이 아니다. 시중에 출판돼 있는 대다수 듣기 교재들이 영어 철자를 가지고 훈련시키는데,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다.
둘째, 소리 듣기 훈련은 발음 기호로 한다. 다소 단순하게 말한다면, 영어의 소리 세계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에 불과하다. 영어의 자음과 모음을 터득하면 소리는 다 들을 수 있다.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음절을 만들고, 음절들이 연결돼 리듬을 만든다. 영어의 자음 모음과 리듬을 익히면 영어의 소리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하는 한국인은 영어 소리를 나타내는 발음 기호들을 먼저 익혀야 한다. 번거로운 절차 같지만 이것을 반드시 익혀야 한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듣기와 말하기는 소리로 시작해서 소리로 끝나기 때문이다.
문자 영어의 학습은 철자를 가지고 해야 하지만, 소리 영어의 학습은 발음기호를 가지고 해야 한다. 발음기호는 소리 세계를 나타내는 기호다. 철자를 외우기도 번거로운데 발음기호까지 학습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발음기호를 통해서 소리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셋째, 1, 2단계를 학습하는 동안에는 의미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소리인데, 관심이 의미에 가 있으면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 1, 2단계의 소리 듣기 훈련은 들리는 소리 그 자체가 무슨 소리인지 습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리 그 자체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3, 5단계 학습에는 의미 파악을 연습하지만 철자가 아닌 발음기호를 가지고 한다.